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나를 기다리는 건 세 아이의 각기 다른 리듬과 요구다. 누구는 울고, 누구는 말이 넘치고, 누구는 투덜댄다. 그 모든 걸 동시에 받아내야 하는 저녁 시간은 마치 감정의 태풍을 정면으로 맞는 기분이었다. 나는 자주 소리치고, 후회하고, 무너졌다. 그래서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하기 위한 감정 방어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세 아이의 방과 후를 감정적으로 수습하고, 나 자신까지 망가지지 않게 하기 위한 실전형 정리해본다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으면, 다음 날을 다시 시작할 힘도 생긴다.
3개의 입, 3개의 감정, 3개의 이야기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면 “엄마, 나 오늘 너무 짜증났어!” “엄마, 나 칭찬받았어!” “엄마, 나도 말할 거 있어!” 세 방향에서 동시에 감정과 말이 몰려든다. 나는 아직 가방도 벗지 않았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의 이야기는 동시에, 겹치고, 튕긴다. 어느새 나는 숨이 가빠지고,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만! 조용히 해!!”를 외치고 있다. 그 순간, 아이들도 울고, 나도 무너진다. 하루가 끝나지 않았는데 감정이 먼저 끝나버리는 기분. 이걸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는 ‘방과 후 감정 폭풍’을 다루는 다섯 가지 장치를 만들었다.
퇴근 후부터 잠들기 전까지, 엄마의 감정 진압 루틴 5단계
1. 입구 3분은 무조건 ‘말 없는 시간’ 확보
현관에서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손으로 제스처를 한다. “엄마 지금 리셋 중이야. 3분만 말 안 걸어줘.” 이건 아이들과 약속된 신호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은 모두 안다. 3분 뒤, 나는 숨을 고르고 아이들에게 눈을 마주친다.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었다는 표시.
2. 동시에 말하면, 순번 돌리기 게임처럼
아이들은 말할 타이밍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래서 순서를 정하는 놀이처럼 만든다. “오늘은 작은 목소리 순!” “오늘은 가위바위보 이긴 사람부터!” 순서를 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훨씬 차분해진다. 기회가 있다는 확신이 아이의 감정을 안정시킨다.
3. 감정마다 리액션 온도를 다르게 조절
칭찬받은 아이는 같이 웃어주고, 울컥한 아이는 조용히 안아준다. 모든 감정을 똑같이 반응하지 않는다. 리액션이 같으면 감정은 섞인다. 다르게 받아주는 것이 아이의 감정을 ‘존중받았다’고 느끼게 한다.
4. 저녁 준비 중에는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
밥을 하며 동시에 대화를 시도하던 걸 멈췄다. 시간을 쪼개지 않고 분리했다. 밥하기 전 15분은 ‘아이 감정 수습 시간’, 저녁 준비 시간엔 “이따가 마저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분리된 시간은 집중된 감정을 만들어준다.
5. 잠들기 전, 아이별로 단 한 줄의 정리
첫째에겐 “오늘 의견 말해줘서 고마워” 둘째에겐 “네 감정 잘 표현했어” 막내에겐 “네 얘기, 엄마가 기억하고 있어” 단 한 줄이 아이의 하루 감정을 마무리해준다. 이 문장이 다음 날 아이의 감정 컨디션을 바꿔준다.
폭풍이 지나간 후, 엄마의 마음은 누가 정리해주나요?
아이들의 하루를 정리해주고 나면 내 안엔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감정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마지막으로 나에게도 한 문장을 남긴다. “오늘도 폭풍 속에서 중심을 잘 잡았어.” “조금 힘들었지만, 감정은 넘치지 않았어.”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낮게 쓰려고 애쓴 나, 정말 잘했어.” 이 문장이 없던 날엔 잠드는 게 더 버거웠다. 하지만 이 말이 생기고 나선 다음 날을 덜 무서워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진정시키는 루틴은 결국 나를 지키는 감정의 루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