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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첫째와 마음 잇기

by 소라해 2025.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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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하는딸을따뜻한눈빛으로 쳐다보는엄마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첫째 아이는 감정 표현이 서툴고, 특히 화용론적 언어 미숙으로 인해 또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엄마로서 도와주고 싶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멀찍이 지켜보던 시간이 많았다. 이 글은 그런 첫째 아이와의 거리감을 조금씩 좁혀가며 다시 마음을 연결해간 실제 경험담이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곁에 있는 태도이며,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어른의 마음이다.

사춘기의 문 앞에 선 아이

첫째가 중학생이 된 이후, 나와의 대화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전에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쉴 새 없이 말하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몰라", "그냥"이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피곤한가보다 했지만, 점점 아이의 표정이 굳어지고 말수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사춘기의 시작을 실감했다. 이 아이는 공부는 곧잘 하지만, 감정 표현이 서툴렀고 특히 화용론적 언어가 약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분위기나 암묵적인 의미를 잘 읽지 못해 종종 갈등이 생겼고, 그로 인해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는 그 상황이 힘들었지만, 표현하지 못했고, 나는 그런 아이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다그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무심히 내뱉은 말이 가슴에 박혔다. "나는 왜 자꾸 친구들이랑 어색해질까?" 그 말은 아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견디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신호였다. 나는 말없이 아이 옆에 앉았다. 그때부터였다.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대답이 아니라, 함께 있어주는 존재라는 걸 느꼈다. 이 글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 나와 아이의 거리 좁히기 기록이다. 말이 오가지 않아도, 마음은 다가갈 수 있다는 걸 매일 느끼며. 지금도 완벽하진 않지만, 우린 서로의 눈을 마주치는 법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말 없이 다가가는 다섯 가지 방법

① 질문을 줄이고 관찰을 늘리다
아이에게 “오늘 어땠어?”라고 물어보면 오히려 귀찮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서 질문을 줄이고 관찰을 늘렸다. 가방을 던져놓는 동선, 식탁에 앉는 자세, 방에 머무는 시간… 그런 사소한 것에서 아이의 감정 상태를 읽으려 노력했다.

② 공감 대신 수용하기
아이가 친구 이야기를 할 때, “그런데 그건 네가 좀 심했네”라는 말은 아이를 닫게 만든다. 나는 판단을 멈추고 “그랬구나” 한마디만 하기로 했다. 그러자 아이는 점점 더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③ 말보다 함께 있는 시간 늘리기
대화를 시도하기보다 같은 공간에 자연스럽게 머물렀다. 아이가 책을 볼 때 나도 책을 읽고, 같은 음악을 공유하고, 말 없는 시간에 안정을 느끼게 해줬다. 그 무언의 시간들이 마음을 여는 창이 되었다.

④ 갈등을 반복하지 않기
화가 났을 때 그 자리에서 충분히 말하고, 그 이후로는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같은 주제를 다시 꺼내지 않으니 아이도 마음의 벽을 조금씩 내렸다. 기억되는 건 대화보다 태도였다.

⑤ 중간 언어 활용하기
쪽지, 간식, 짧은 글귀, 스티커 등 직접적인 말이 아닌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수고했어”, “고생했지” 같은 글귀 하나가 아이에겐 거부감 없이 다가왔다.

 

사춘기, 믿음으로 연결된 거리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는 거대한 파도 같다.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밀려난다. 중요한 건, 아이가 흔들릴 때 내가 멀어지지 않는 것이다. 말이 아니라 태도로, 조언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아이와 연결되는 순간이 분명 있다. 지금도 첫째는 감정 표현이 서툴고, 친구 관계에서도 여전히 불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혼자 끙끙대기보단 조심스레 내게 신호를 보낸다. 나는 그 작은 신호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말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지만, 믿음은 침묵 속에서도 전달될 수 있다. 부모가 먼저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 아이도, 나도 서툰 채로 함께 살아간다. 그 불완전함을 견뎌주는 시간이 아이에게 가장 큰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사춘기를 함께 지나가는 지금, 나는 엄마로서의 내 존재를 말보다 분명히 느낀다. 그리고 언젠가 이 시간이 우리 사이를 더 깊게 만든 시간으로 기억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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