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가 셋 이상이면 집 안은 작은 사회와 다를 바 없다. 나 역시 세 딸을 키우며, 그들 사이에서 오가는 미묘한 기싸움을 수없이 목격했다. 겉으로는 별 말 없지만, 눈빛과 표정 속에 담긴 긴장감이 감정을 타고 흐른다. 특히 첫째와 둘째, 둘째와 막내 사이에서 미묘하게 반복되는 역할 싸움은 엄마 입장에서 때론 개입하고 싶고, 때론 모른 척하고 싶어진다. 이제는 감정적으로 얽히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의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부모의 개입 범위에 대해, 나의 경험을 정리해볼려고한다. 관찰자이자 조정자인 엄마의 위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섬세한 균형을 필요한것 같다.
엄마는 중재자인가, 목격자인가
우리 집은 딸 셋이 각기 다른 개성으로 뚜렷하다. 큰딸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편, 둘째는 감정적이고 예민하며, 막내는 눈치가 빠르고 애정 욕구가 크다. 이런 성향들이 충돌할 때마다 조용한 전쟁이 벌어진다. “내가 말하려고 했잖아.” “언니가 또 무시했어.” “나만 빠졌어.” 말보다 표정과 행동에서 오는 긴장감이 더 크다. 처음엔 무조건 중간에 끼어들었다. 누구 말이 옳고, 누구 행동이 문제인지 따지기 바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꼈다. 내 개입이 아이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장’할 수도 있다는 걸. 그때부터 내 입장은 바뀌었다. 직접 개입자가 아니라 ‘관찰자’로서 거리를 두고 아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는 쪽으로. 갈등은 관계의 한 형태이고, 어른이 무조건 정답을 내려줘야만 끝나는 건 아니라는 걸 아이들 스스로 깨달아야 했다. 엄마가 할 일은 중립성을 지키며, 그들의 관계를 다시 세울 수 있는 틀을 제공하는 것에 가깝다고 느꼈다.
세 자매 갈등을 다루는 엄마의 세 가지 위치 전략
1. 감정이 고조된 순간엔 ‘정지 버튼’을 누르기
갈등이 격해질 때, 즉각적인 개입보다 효과적인 건 ‘시간 멈춤’이다.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언성이 높아질 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감정이 너무 올라왔으니까, 조금 멈췄다가 다시 이야기하자.” 이 한마디로 물리적으로 대화를 잠시 멈추면 감정이 가라앉는다. 중요한 건, ‘누가 옳은지’가 아니라 ‘지금 감정이 조절 가능한 상태인지’다.
2. 잠시후 1:1로 각 아이의 입장을 따로 듣기
갈등을 목격한 날 밤, 각 아이와 1:1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는 편도 들지 않고, 옳고 그름도 말하지 않았다. “너는 그때 어떤 기분이었어?”만 반복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서운했고, 서로에 대해 전혀 몰랐던 감정들이 있었다. 이 1:1 대화는 감정을 다독이는 동시에, 아이 스스로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3. 역할 분담을 통한 간접 개입 방식
갈등이 반복되는 자매들에게 직접 충돌을 줄이기 위해 ‘공동의 목적’을 주기도 했다. 예를들어 셋이서 간식 만들기, 집 정리 프로젝트, 협동 게임. 등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누고, 서로 도와야만 완성되는 과제를 부여하면 경쟁보다 협력으로 기류가 바뀐다. 엄마가 판을 짜되, 중심에 서지 않고 뒤에서 지켜보는 방식이다. 이렇게 했을 때 느낀 건, 아이들은 다툼 이후 다시 가까워질 기회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 기회를 너무 빨리 가로채지 않는 인내가 부모에게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가 중립을 지킬 때 아이들은 관계를 배운다
형제자매 간 갈등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관계를 회복하는 힘은 부모가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자란다. 나 또한 처음엔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데 집중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감정을 다룰 수 있는 방식’을 키워주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엄마가 중립을 유지하면, 아이는 ‘엄마는 누구 편이 아니고, 우리 관계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구나’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그 믿음이 형성되면, 아이들도 점차 감정 조절을 배우고, 사과하거나 다시 말을 거는 시도를 하게 된다. 세 자매가 동시에 웃는 날은 드물지만, 동시에 울지 않게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의 갈등이 반복될수록, 나는 그 갈등이 성장의 과정임을 믿고 기다려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아이들은 조금씩 더 단단한 자매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