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공부 좀 해”라는 말은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의 태도보다 먼저 바꿔야 할 게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바로 공부하는 공간, 말투, 시간, 분위기 등 ‘학습을 끌어내는 환경’이다. 이 글에서는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내가 집 안의 환경을 어떻게 조율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함께 움직였는지를 현실적으로 정리했다. 부모의 말보다 공간과 분위기가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기록이기도 하다.
“그냥 공부하기 싫어”라는 말 뒤에 숨은 마음
우리 둘째는 평소에 예체능엔 열정이 넘치지만 책상 앞에만 앉으면 5분 컷 이다. 처음엔 게으른 줄 알았고, 나태하다고 판단했다. “공부 좀 하자”는 말도 반복했고, 성과 중심으로 접근하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툭 던진 말에 멈춰섰다. “그냥 공부는 재미가 없어.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 한마디가 아이를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단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아이에게 ‘학습’은 늘 누군가 시키는 일이었고, 스스로 주도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걸. 내가 먼저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아이가 ‘하고 싶다’고 느끼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공부하라는 말보다, 공부하고 싶은 ‘분위기’를 만드는 게 먼저라는 걸 조금씩 실험해 보기 시작했다. 아이의 성향에 맞춘 자리 배치, 공부하는 시간대 조정, 엄마의 말투 변화까지. 바뀐 건 아이보다 나였다. 그리고 그 변화는 결국 아이에게도 서서히 영향을 미쳤다.
학습을 부르는 공간과 관계의 조건
1. 책상이 아니라 ‘기분 좋은 자리’ 만들기
아이의 공부 공간을 바꿔보았다. 등받이 없는 딱딱한 의자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색의 방석을 깔았고, 채광이 잘 드는 창가 옆으로 책상을 옮겼다. 조명도 아이가 좋아하는 노란색에서 따뜻한 백색등으로 바꿨다. “여기서 공부하면 마음이 편해져”라는 아이의 말이 처음 나왔을 때, 그 공간은 더 이상 ‘공부하라고 몰아세우는 자리’가 아니었다.
2. 학습 시간은 아이의 리듬에 맞춰서
기존에 하던 시간표를 전면 수정했다. 저녁 8시는 늘 피곤해하던 시간. 대신 오후 4시, 간식 직후에 집중이 잘 된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때를 핵심 학습 시간으로 삼았다. 공부는 양보다 흐름이었다. 흐름이 좋은 시간대에 짧게라도 집중하면, 전체 효율은 훨씬 높았다.
3. 질문하는 분위기를 먼저 만든다
“왜 이걸 공부해야 돼?”라는 아이의 질문에 짜증 내는 대신,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는 말로 시작했다. 질문을 막지 않자 아이가 스스로 더 많이 생각했고, “이건 어떻게 된 거야?” 같은 질문도 나오기 시작했다. 학습은 알려주는 게 아니라, 궁금증을 살려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걸 다시 느꼈다.
4. 성과 피드백은 감정으로
아이에게 “오늘 몇 개 풀었어?” 대신 “집중한 모습 멋졌어” “포기하지 않고 끝냈네” 같은 피드백을 자주 건넸다. 숫자나 점수보다 감정에 기반한 칭찬이 아이의 자기 효능감을 자극했다.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기 시작하자, ‘조금 더 해보자’는 말이 아이 입에서 나왔다.
5. 엄마도 같이 하는 시간 만들기
아이 혼자 공부하게 하지 않았다. 나는 옆에서 독서를 하거나 블로그 정리를 하며 함께 앉아 있었다. 아이는 “혼자 안 하니까 덜 지루해”라고 했다. 동기부여는 때로 ‘누군가 함께하고 있다’는 안정감에서 비롯된다.
말보다 환경이 먼저 말을 건다
공부를 잘하게 하는 비법은 없었다. 대신 공부하고 싶은 ‘느낌’을 만드는 건 가능했다. 그 느낌은 성과 중심 피드백이 아닌, 공간, 시간,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아이에게 공부는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하기 싫다’는 말은 줄었고, 스스로 문제집을 펴는 날이 생겼다. 나는 그 작고 조용한 변화가 진짜 동기부여라고 믿는다. 이제는 말보다 먼저 환경을 점검한다. 자리 배치, 조명, 말투, 시간… 아이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조건을 먼저 만들었을 때,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의욕이 움트는 걸 보게 된다. 부모가 조급함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가 스스로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