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매가 자주 싸운다. 나도 매번 중재했다. 하지만 싸움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더 피곤해졌다. “누가 먼저 그랬어?”, “왜 또 언니 울려?” 이런 말들은 문제를 잠시 멈추게 했지만, 관계는 더 어색해졌다. 어느 날부터 나는 ‘바로 개입하지 않기’를 실험해보기로 했다. 이 글은 아이들 사이의 갈등에 어른이 무조건 개입하지 않고도, 어떻게 감정과 관계가 스스로 회복될 수 있었는지를 기록한 내용이다. 아이들의 갈등은 어쩌면 아이들만의 언어로 풀어야 한다는 걸, 이제서야 조금씩 배우고 있다.
“왜 또 싸워?”가 입에 붙은 엄마였던 나
한 번은 막내가 울면서 달려왔다. “언니가 내 그림 찢었어!” 곧이어 둘째가 반박했다. “자기가 먼저 밀었어!” 나는 무조건 달려가서 누구 말이 맞는지 따졌다. 서로 말리느라 진이 빠졌고, 감정은 더 상했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나는 아이들이 싸우는 걸 보면 숨부터 쉬게 됐다. ‘이제 또 뭘 중재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 갈등을 나 없이도 풀 수 있게 할 순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중재를 ‘안 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그날부터 싸움의 결과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싸움은 줄지 않았지만, 회복력은 높아졌다
1. 개입하지 않는 대신, 감정 언어를 남겨뒀다
싸움이 나도 중간에 끼지 않고, 말 한마디만 남겼다. “지금 감정이 올라와 있구나. 나중에 괜찮아지면 얘기해줘.” 아이들은 싸우다 말고 그 말을 한 번쯤 되새겼다. 즉시 끼지 않아도, 감정을 언어로 붙잡아주는 방식이었다.
2. 누가 잘못했는지보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묻게 했다
갈등이 지난 후,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 “왜 그랬어?” 대신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를 물었다. 감정을 설명하게 하면, 아이 스스로 입장을 정리할 수 있었다. 결국 싸움이 줄지 않아도, 그걸 다루는 ‘방식’이 자라났다.
3. 문제 해결이 아니라 회복 중심의 대화를 했다
“다음엔 그러지 마” 대신 “다시 친해지려면 뭘 하면 좋을까?”를 물었다. 관계는 통제보다 회복이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실제로 막내는 편지를 써주거나, 둘째는 간식을 나누며 화해의 방법을 찾았다.
4. 사과를 강요하지 않으니, 진짜 사과가 생겼다
예전엔 “사과해”라는 말이 먼저였다. 지금은 사과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랬더니 시간이 좀 지나면 아이들이 스스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날이 생겼다. 강요 없는 사과는 관계의 진짜 복원이었다.
관계는 어른이 통제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아이들 싸움을 못 본 척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단지 개입의 시점을 바꾸고, 중재자의 자리를 내려놨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갈등을 통해 관계를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른이 섣불리 끼어드는 순간, 그 배움은 멈췄다. 지금도 아이들은 싸운다. 하지만 나 없이도 풀리는 경우가 많아졌고, 사과와 회복이 조금 더 ‘진짜 감정’에서 나오는 걸 본다. 이제 나는 아이들이 다투면 ‘이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려나’를 지켜본다. 어쩌면, 그게 내가 진짜로 해야 할 역할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