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 좋고 스스로 학습을 잘 따라가는 아이인데도, 친구관계에서는 늘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경우가 있다. 내 아이 역시 그렇다. 혼자 있는 걸 더 편하게 느끼고,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부모로서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사회성까지 함께 자라나는 건 아니라는 걸 아이를 키우며 직접 깨달았다. 이 글은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걱정해본 부모의 고민에서 출발해, 아이의 장점을 살리면서 사회성도 함께 키우기 위한 실제 방법들을 제안한다. 비난 없이, 비교 없이, 관계를 가르치는 것보다 먼저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법’을 알려주는 과정이 핵심이다.
조용하고 혼자인 걸 좋아하는 아이, 문제일까?
우리 첫째는 전형적으로 ‘공부는 잘하지만 친구관계는 서툰 아이’였다. 발표도 잘하고 시험도 늘 상위권이지만, 쉬는 시간이면 혼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담임 선생님도 “공부는 잘하는데 친구들과 대화가 거의 없다”고 말했을 때, 속이 철렁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여도,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서적으로는 점점 고립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이 모둠활동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때, 내 아이는 본인이 맡은 역할만 조용히 끝내고 빠진다. 감정 표현이 적고,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도 서툴다. 처음엔 그게 성격이려니 했지만, 반복되다 보니 ‘이게 아이에게는 또 다른 고민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친구와의 관계가 얕거나 끊어지는 상황이 반복되면, 나중엔 자신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다고 믿게 될까 걱정됐다. 아이가 똑똑하다고 해서, 정서적으로도 성숙한 건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결국 부모인 내가 도와야 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사람과 어울리는 데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지, 억지로 친하게 만들기보다 ‘어울릴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기르게 하려면 어떤 접근이 필요한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회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를 무조건 밖으로 끌어내는 건 오히려 역효과였다. 처음엔 나도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좀 놀아봐"라고 권유했지만, 아이는 그 말에 오히려 불편해하고 자꾸 주눅 들었다. 그래서 접근 방식을 바꿨다.
1. 아이의 기질을 인정하고 출발선 맞추기
외향적인 아이들과 비교하면 내 아이는 분명 더 조용하고 내향적이다. 그걸 문제로 보지 않고, ‘이 아이는 이렇게 에너지를 관리하는구나’라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했다. 대신 ‘관계 맺는 기술’은 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향성과 사회성은 별개다.
2. 연습할 수 있는 소규모 관계부터 만들어주기
넓은 친구 관계보다는, 한두 명과 깊이 있는 관계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예를 들어, 같은 책을 좋아하는 친구, 학원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와 점심을 함께 먹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아이가 너무 부담되지 않도록, 나서기보다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을 마련했다.
3. 대화 연습은 집에서부터
친구와의 대화가 서툰 아이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집에서 상황극처럼 연습을 했다. “친구가 숙제를 못 해왔대, 뭐라고 말해줄래?” 같은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상황에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함께 연습했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아이가 점점 자연스럽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4. 관계보다 감정에 집중하게 하기
“친구 많이 사귀어야지”보다 “친구랑 이야기할 때 기분이 어땠어?”를 묻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관계의 양보다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인식하도록 돕는 게 더 중요했다. 아이가 “오늘은 좀 따뜻했어”라고 말했을 때, 그 한마디가 훨씬 많은 걸 말해준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는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관계 맺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는 없다. ‘사회성’은 결국 연습과 경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친구를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나를 지키며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것
나는 아이에게 친구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단 한 명이라도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깊이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 스스로가 사람과 어울리는 걸 불편해하지 않도록 감정적인 안전지대를 만드는 일이었다. 아이의 공부 능력은 스스로 키워나갈 수 있다. 하지만 사회성은 주변의 환경과 경험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불안해하지 말고, 그 안에서 감정이 건강한지를 살펴봐야 한다. 친구를 만들라고 다그치기보다, 친구와 있을 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게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지금도 첫째는 여전히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전처럼 외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는 마음 맞는 친구 한두 명과 가끔 장난도 치고, 모둠활동에서도 조금씩 목소리를 낸다. 그 작은 변화들이 쌓여, 아이는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키워가고 있다.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은 아이가 사회 속에서도 편안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조용히 옆을 지켜주는 일이라는 걸, 지금은 안다.